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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생에게도 연차 휴가가 있다면 [인권뉴스레터 제5호] 기고 작성자 인권센터 인권상담실
작성일 2021-05-12    
공현 : [유예된 존재들]의 저자

어릴 때부터 정주하는 고향 없이 여기저기 이사 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물려받은 기질인지, 조금 삐딱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다. 2005년 고등학교 때 두발 자유 운동부터 시작하여 청소년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살아생전 두발 자유화 정도는 꼭 이루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등에서 활동해 왔으며, 병역거부와 대학거부를 하기도 했다. 왜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이제는 그냥 그 운동이 내 삶이라고 대답한다.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우리는 현재다 - 청소년이 만들어온 한국 현대사》, 《인권, 교문을 넘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가장 민주적인, 가장 교육적인》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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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도 연차 휴가가 있다면

공현

 

실연 결석의 기억

 

나의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처음 짝사랑을 해 보며 감정의 풍랑에 휩쓸려 어찌할 줄을 몰라 갈피를 못 잡았다. 그가 이미 다른 상대와 연애 중임을 알면서도 고백했고 거절당했다. 뻔히 예상한 결말이었고 고백은 그저 마침표를 찍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슬펐고 각오했던 것보다 괴로웠다. 도무지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무단결석을 감행했다. 그래 봤자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학교 바깥 어딘가 멀리로 떠날 기력도 없었다. 아침부터 그저 교정 구석 벤치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무는 걸 보며 조금 울었던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단결석에는 대가가 따랐다. 어쩐지 당일에는 찾는 연락이고 뭐고 안 오더니, 알고 보니 교사들이고 동급생들이고, 내가 어디 교외 행사에 나간 줄 착각했다고 했다. 다음날 결석 이유를 묻는 담임 교사에게는 실연이 힘들어서 그랬다고 답했고 딱히 잘못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담임 교사는 앞에 나와 엎드리라고 지시했고, 교사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실연 결석은 마무리되었다. 매를 맞은 아픔은 곧 잦았지만 실연의 괴로움이 희미해지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생에게 휴가권은 있는가

 

이 일이 문득 떠오른 것은 최근 활동 중인 단체에서 상근자 휴가 규정을 논의하던 때였다. 직계 존속이니 비속이니 하는 제한은 두지 말고 소중한 사람이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휴가를 보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결혼 시 휴가를 보장한다면 이혼이나 이별 시에도 보장해야 하지 않을지, 아직 법률혼이 불가능한 동성 커플의 경우는 어떻게 할지 등의 이야기도 오갔다. 어떤 것이 인간적인 휴가 인정의 기준인가 고민하고 논의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보람차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왜 학생은 이렇게 선택해서 쓸 수 있는 휴가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싹텄다.

사실 굳이 특별한 사유를 인정받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노동자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자기 사정에 따라 며칠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15-2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이처럼 법에 보장된 휴가를 실제로는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이 많다는 고질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반면 초··고 학생의 경우에는 자기 사정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제도 같은 것은 없다. 방학이 있지만 이는 일률적인 휴업이지 개인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꼭 하고픈 취미 활동이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학교를 빠진 학생은 무단결석일 수밖에 없다. 근래 도입된 교외체험학습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나, 보호자의 신청이 있어야 하고 여행이나 학습 활동 등의 사유만 인정해 주며 사후 보고서도 내야 하니 자유로운 휴가라 보기는 어렵다. 학생의 개인적 사정에 따른 휴가, 결석은 아예 인정해 주지 않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자와 달리, 학생은 힘들게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며 결석을 해도 큰 문제가 없으니 휴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학교에 나와 배우는 일이 교육권 실현을 위한 자발적 과정이라면 맞는 소리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출석과 공부는 의무처럼 부과되고 무단결석은 일탈 내지 비행으로 취급받는다. 대부분의 초··고에서 일정 이상의 무단결석을 중징계 대상으로 삼으며 결석은 평가상의 큰 감점 요인이다. 대학교는 어떨까? ··고와 달리 결석 자체를 징계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업에 따라서는 출석 점수가 한 학기 총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결석을 몇 회 이상 하면 자동으로 낙제 점수를 주곤 한다. 학점 경쟁이 치열해진 오늘날 대학의 현실에서 결석으로 인한 감점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다가온다.

교육이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배움에 덜 참여한 것 자체가 이미 학생에게 불이익일 텐데, 학교는 그 이상으로 결석을 금지하고 학생을 벌한다. 마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지키도록 훈련시키고 통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듯이. 이렇게 결석이 처벌 대상이 되거나 평가상의 불이익 요소가 되는 것은 수업 출석이 강제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고,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이 쓸 수 있는 휴가 제도가 없는 것은 꽤나 비인간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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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정과 쉼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해

 

실연이 괴로워 빠졌다는 학생에게 벌을 주는 학교보다는, 학생과 그 일에 대해 대화하고 걱정을 해 주며 빠진 수업에 보충이 필요한지를 묻는 학교가 훨씬 교육적이다. 학생의 결석을 학생이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거나 포기한 일로 보고 도울 부분을 찾으려는 태도가 교육의 본질에는 더 부합한다. 입시니 관리니 하는 문제로 당장 그러기가 어렵다면, 학생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제도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일수를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줄 수 있을 것이며, 다양한 조건에 있는 학생들에게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학생에게 휴가가 보편적으로 보장되면 생리공결제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데도 일조할 수 있다. 얼마 전, 노동 선진국들에 생리휴가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든 아플 때 쓸 수 있는 병가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외국은 생리휴가가 없다? “아프면 누구나 쉴 수 있으니까!”, 한겨레, 2021427) 만일 학생들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결석 제도나 병결 제도가 보편화된다면 어떨까? 생리통으로 몸이 안 좋아서 쉬는 것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학교의 방침과 습속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 예컨대 노동절(51)이 법적으로 유급휴일이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공기관이나 학교가 51일에 쉬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근이 당연시되며 상 받을 일로 여겨지고, 개인의 사정에 따른 자유로운 휴가 같은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학교에서부터 익힌 문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연차 휴가를 보장해 보자. 학생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좀 더 교육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개인의 사정에 따라 쉴 수도 있는, 휴가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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